유행은 한 사회의 어느 시점에서 특정 생각, 표현 방식, 제품 등이 그 사회에 침투 또는 확산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현시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고 같이 공유하는 무언가를 우리는 유행이라 부른다.

특히 유행을 타는 분야들이 있다. 패션이 그렇고 엔터테인먼트 분야도 그렇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활활 타올랐던 스크롤 형식의 슈팅게임이나 턴제 게임은 예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대신 방치형, 소울라이크, 서브컬쳐 등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한국 게임판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급부상한 방치형 게임들이 차트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블루 아카이브, 원신 등 서브컬쳐 게임도 팬덤을 중심으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게임시장에서 뭐니뭐니 해도 불멸의 장르는 MMORPG다. 사실 최근 전세계유저들의 MMORPG에 대한 관심은 점차 식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MMORPG를 개발하는 개발사들도 많이 줄었고 부담스러울 만큼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다 이른바 노가다라 불리는 반복 사냥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MMORPG가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MMORPG는 여전히 흥행을 이어가며 각광받고 있다.

 

대한민국 MMORPG 보상과 경쟁에서 길을 찾다

모든 게임은 보상과 경쟁에서 게임의 재미를 찾는다. 싱글게임의 경우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고 유저 혹은 게임 속 캐릭터와 경쟁에서 승리하는 재미를 즐기기도 한다.

게임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보상과 경쟁은 우리 게임에서는 더욱 두드러졌다. 온라인 게임이 주도한 한국 게임은 자연스럽게 재미의 무게추가 유저간 경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자유로운 PvP 시스템은 MMORPG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재미 요소이자 목적성을 부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MMORPG는 물론 게임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공성전의 등장은 MMORPG라는 장르에 불멸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물론 실제 현금이 사용되고 특정 세력에 의해 통제가 이루어지는 등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유로운 PvP와 공성전 등 유저간 경쟁을 활용한 시스템은 많은 서사를 낳을 정도로 MMORPG의 핵심 시스템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PC가 지배했던 게임 플랫폼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게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게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작은 화면에서 PC처럼 플레이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모바일 플랫폼에 맞게 MMORPG를 변화시켜야 했고 PC에서는 금기시되었던 것들이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동전투다. 과거 매크로라며 금지했던 자동전투가 비단 모바일 MMORPG 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으며 ‘보는 게임’의 시대가 열렸다.

게임을 조작하는 재미가 희미해지자 보상은 더욱 중요한 재미요소로 떠올랐다. 적재적소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고 유니크한 아이템 혹은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이 게임의 핵심 키워드가 되었다.

당연히 성장의 방식 역시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 PC 플랫폼 MMORPG는 어려움을 직접 헤쳐 나가는 ‘과정의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보상이 주어졌다. 하지만 모바일 플랫폼 MMORPG에서는 이른바 붉은 점 지우기 즉 ‘보상 완료’를 하는 행위로 캐릭터를 플레이 하는 재미를 대체했다. 수많은 보상 완료를 이어가며 캐릭터를 한단계 성장시켰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MMORPG가 주는 가장 주된 재미가 된 것이다.

불확실성이야말로 확률형 아이템이 주는 가장 큰 쾌감이다
불확실성이야말로 확률형 아이템이 주는 가장 큰 쾌감이다

그래서 확률형 아이템은 그것의 싫고 좋고를 떠나 지금 우리 MMORPG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비단 수익적인 면 뿐만 아니라 게임의 생명력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다.

MMORPG의 목표는 뚜렷하다. 가장 좋은 장비 혹은 캐릭터 등을 얻는 것이다. 이 가장 좋은 무언가를 확률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는 MMORPG에 영생의 삶을 부여했다. 즉 아무리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뽑지 못하면 강한 캐릭터로 성장시킬 수 없다. 반대로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어느 순간 갑자기 최강의 캐릭터로 거듭날 수도 있다. 확률형 아이템이 가진 이 불확실성은 게임을 플레이 할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화려한 컨트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즐거움보다, 센스있게 레이드 보스의 패턴을 잘 피해가며 공략에 성공했을 때의 즐거움 보다, 전설급 아이템을 뽑아 내 캐릭터가 퀀텀점프를 이뤘을 때의 짜릿함은 앞선 기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MMORPG 흥행의 법칙

보상과 경쟁이 자동전투와 만나 폭발력을 더했지만 그로 인해 게임이 비슷해지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보상을 받는 것에서 재미를 찾게 되자 거의 모든 MMORPG가 너른 전장에 수많은 몬스터를 그야말로 널어놓다시피 배치하고 끊임없이 사냥하는 단조로운 게임으로 고착화되었다. 이제는 낚시, 채광 등 생활기술마저 보기 힘들어질 정도로 명확하게 사냥위주의 게임으로 바뀌고 있다. 퍼즐이나 보스 몬스터의 패턴, 직업적 특성 등도 중요치 않다. 그저 하루 종일 수 백마리의 몬스터를 잡는 그림만이 연출될 뿐이다.

고정된 레시피를 사용한 것처럼 비슷한 MMORPG가 등장하지만 놀랍게도 성공하는 게임과 실패하는 게임은 분명 존재한다. 분명 흥행을 좌우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MMORPG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대한민국 MMORPG는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성장과 보상, 경쟁, BM 등 대한민국 MMORPG 흥행의 법칙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설픈 차별화를 꿈꾸지 말라는 점이다.

비슷한 모양새의 게임이 나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껴 차별화를 꾀하는 MMORPG를 종종 본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혼종의 모습으로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다.

정 차별화를 두고 싶거든 모바일 플랫폼은 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자동전투를 빼고 모바일에서 MMORPG를 플레이 할 수 있을까? 보상과 경쟁이 재미의 모든 것인 무료 게임에서 확률형을 제외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바일 식 MMORPG에서 특별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확실하게 레시피의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있게 노력하는데 힘쓰는 것이 게임이 재앙으로 가는 길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비슷한 MMORPG에 실망감을 표현하는 유저들도 있지만 여전히 서버 대기열이 생길 정도로 많은 유저들이 MMORPG를 찾고 있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 필자 역시 천편일률적인 자동전투 게임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사를 위해 40시간 50시간씩 플레이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지금 대한민국 MMORPG는 하나의 독특한 장르가 되었고,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이 장르는 앞으로도 계속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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